학술토론회

[정기학술토론회] “Elsewhere, Nowhere, Everywhere : Reading Utopia in Seoul”

 

|일시: 2013-11-25

 

|장소: 성공회대 새천년관 7417호

 

|발표: 오세미(위스콘신대, 동아시아학)

|행사개요: 공간에서 역사 쓰기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 발표는 경성의 식민지 공간을 하나의 텍스트적 공간으로 조망함으로써 이 질문을 탐구한다. 조선왕조의 수도가 근대 도시로 변환되면서, 식민지 경성은 일본 식민주의의 쇼케이스 도시가 되었다. 여기서 건축은 현실을 만들고 가리면서 이 도시에게 스펙터클한 전망을 부여하고 환경을 허구화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식민지 경성에서 건축과 도시계획의 두 개의 가이드라인 원칙은 삭제와 장식이었다. 첫 번째 원칙은 기존의 도시의 매트릭스에게 스스로를 중처시키는 건축의 구조적 권력에 의존한다. 이 폭력적 과정은 도시의 표면을 재(再)부상시키려는 일차적 의도를 가지고 있고, 공간의 분기를 통해 지도를 다시 그리는 것과 결합되어 있다. 이로써 식민지 경성은 그 최고 이상은 목적론적 역사인 식민적 담론이 되었다. 이 근대성과 식민주의의 절합은 서양의 상이한 전통들과 양식들을 조립한 고도로 장식적인 건축의 특질을 동반했다. 이는 지형학(topography)에는 무관심하고 환경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 않은 유토피아적 전망이었고, 사칭, 모사, 키치를 만들어 냈다. 이 발표는 식민주의의 핵시적 교의를, 목적론적 역사를 통해 쓰인 제국, 문화적 공허에 실존하는 유토피아, 그 본질이 환영인 근대성의 시각에 위치지으려고 한다.

탈냉전시대 이후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항진하던 동아시아가 곤경에 처했다. 태평양을 횡단하던 세계의 축이 바다 한가운데 빠졌다. 동풍을 저지하는 서풍의 마지막 몸부림인가, 아니면 다시 서풍의 계절로 복귀하는 신호인가?
이 점에서 지난 대선에 돌출한 김지하 시인의 언어행동은 상징적이다. “풍자냐 자살이냐”(1970)는 우리 민족문학론/민중문학론의 기점이요, 나아가 동아시아론의 기원이다. 김수영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을 넘어 민중시의 새 시대를 선포한 이 문건은 우리 시/사회의 기념비요 이정표였으니, 김지하는 시대교체의 아이콘이기조차 했던 것이다.
과연 김지하는 김수영을 극복했는가? 혹시 자본주의를 넘어섰다고 호언장담한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비슷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김수영을 철저히 독해할 때다. 서풍에 투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풍을 제대로 극복하기 위해서. 南學의 고갱이를 비판적으로 학습하는 西遊가 종요롭다. 東學의 시대를 제대로 개벽하기 위해서.